Interview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심지어 20년을 근무해도 임금이 똑같은 체제가 너무 억울해 10년 전 학비노조 경남지부를 결성하게 되었다는 강선영 지부장. 그는 “간부들을 비롯해 조합원의 끈끈한 동지애가 지금의 성장을 일궈냈고,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라고 말한다. 강선영 지부장과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조합원 대부분이 처음에는 같은 마음으로 학비노조에 가입했을 거예요. 불합리한 처우로 더는 천대받으며 살기 싫고, 비빌 언덕이 필요했겠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 강선영 지부장은 ‘우리의 비빌 언덕은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노동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민주노총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라디오 뉴스에서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을 만든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민주노총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가입하러 갔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귀에 쏙 박히는 거예요. 마음 깊은 곳에 큰 울림이 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우리나라 헌법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는데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심지어 20년을 일해도 임금은 똑같았고 학교에서 우리는 ‘일용잡급’에 불과했다. “사실 그동안에는 없었던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이 처음에는 살짝 두려움도 있었고 ‘과연 실패하지 않고 잘 운영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실패를 맛보더라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당시 황경순 지부장님을 필두로 경남지부의 닻을 올렸습니다.” 강선영 지부장은 2011년 7월 9일 열렸던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 창립총회에서 준비위원회로 선출되어 2012년 4월 28일 경남지부 출범을 위한 준비를 가장 선두에서 지휘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종은 경남에만 50여 개 직종이 있고, 전국적으로는 70여 개의 직종이 있습니다. 급식소에 가장 많은 인원이 근무하고 있고, 행정실과 교무실에서 업무 보는 노동자부터 과학실, 도서관, 상담실, 스포츠강사, 운동부 지도자, 영어 회화 강사 등 교원과 같이 실제 수업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청소, 당직, 초등돌봄전담사, 특수교육실무원, 통학버스 운영, 언어 및 심리치료 등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종을 일일이 열거해보면 학교를 왜 ‘비정규직 종합백화점’이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직종마다 임금체계가 다르고 작업환경이 다르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각각의 직종들이 처해있는 환경이 학교비정규직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즉, 차별과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이겨내야 한다. 강선영 지부장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빌 언덕이 바로 학비노조였다”라고 설명한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고강도의 노동 속에서도 유령처럼 묵묵히 지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비노조의 출범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즉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들을 만들어온 것이다. “정규직이 아니란 이유로 교직원으로조차 규정되어있지 못한 법적 현실 때문에 하나하나 교섭과 투쟁을 해야만 제도가 만들어졌고, 투쟁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빼앗길 뿐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죽도록 일하지만, 졸업앨범에 이름 한자 나오지 않습니다. 유령처럼 지내야만 했던 것, 이게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임금을 높이는 투쟁을 넘어 교육공무직법 제정을 통해 학교에서의 지위와 역할을 분명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경남은 보수교육감의 아성과 지역의 특성 때문에 전국 꼴찌로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00명 이상 조직을 확대해 나가며 완강한 투쟁으로 스스로 학교현장을 바꾸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역사를 만들어나갔다. “학비노조 조합원은 대부분 40~50대 여성입니다. 이 말은 즉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의 구호는 단순히 학교비정규직만을 정규직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열어달라는 뜻이죠. 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가져온 차별과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무한경쟁을 없앰으로써 우리 아이들만큼은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 번은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해당 학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명인간 취급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었다. “문화체험연수로 대부분 교사가 학교에 없는 날이라 교육공무직원, 방과후강사, 스포츠강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여 학교에 남아있던 100여 명의 학생을 급하게 대피시켰어요. 그런데 학교 관리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화재현장에 다시 들어가서 상황을 문자로 보내라고 지시한 거예요.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더 위험한 일을 요구하고, 노력해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죠. 당시 이 사건으로 학비노조는 더는 우리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결의했었습니다.”
학비노조가 단결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외부에서 얼핏 보면 집단 이기주의로 보여질 수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노동권리를 꽃피울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한
의미있는 투쟁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선영 지부장은 지난 10년 동안의 투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홍준표 도지사 시절 ‘도의회 급식비 예산 삭감 규탄 투쟁’을 꼽았다. “2015년 홍준표 도지사 시절 무상급식을 유상급식으로 역행하던 시기가 있어요. 당시 홍준표 도지사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공짜 밥을 줄 수 없으니 이제부터 경남도에 있는 아이들은 돈을 내고 점심을 먹으라고 한 거예요. 홍준표 도지사를 비롯해 도의회 보수의원들이 아이들의 밥값 예산을 삭감하는 만행에 분노해 67일 동안 천막농성을 통해 새누리당 규탄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 투쟁으로 보수정당의 본색을 정확히 확인하게 되었고 노동자가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뼛속까지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 창궐로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도 경남지부 조합원들은 하나가 되어 상시 전일근무제 시행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코로나로 인해 방학 중 비근무로 발생하는 생계문제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발생하는 비인권적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투쟁이었습니다. 당시 경남지부는 상시 전일근무제 시행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이어갔습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강요되는 방학 중 무급제, 단시간 근무제 등 불안정한 노동이 노동자의 안정된 삶 유지 등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해달라는 거였죠. 이 투쟁을 통해 객관적인 상황의 어려움이 주체의 절박함, 절실함 앞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강선영 지부장은 2019년 3일간의 전국총파업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파업 동안 죄 없는 아이들이 따뜻한 밥 대신 빵으로 때워야 하는 현실에 부담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투쟁이 결국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투쟁임은 분명하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되고 있는 만큼 우리 아이들도 커서 취업을 하고 노동조합에 가입도 할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노동3권이 보장되는 사회에 살게 할 거냐 아니면 노동3권이 무시되는 사회에 살게 할 거냐 그것은 온전히 우리 어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노동권리를 학교에서부터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노사로 역할을 나누고 모의 교섭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커서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가르치는 겁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집단이기주의적인 투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전체사회의 이익이 되는 방향에서 고민하고 설계합니다. 즉, 우리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노동권리를 꽃피울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촛불을 든 국민의 힘으로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철폐와 공정임금제를 국민과 약속했었다. 하지만 2021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비정규직 차별은 없어지지 않았고, 공공기관마저 자회사 전환과 무기계약직이라는 변죽만 울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리는 2021년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어떻게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공정임금제를 통해 차별을 줄여나갈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교육감들은 교육부는 권한이 없다고 말하고 정작 교섭이 되면 정부에서 재정을 담보해야 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공약임에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죠.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정치가 바뀔 것이라 기대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교육의 주체, 정치의 주체가 되어 비정규직 철폐를 일궈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학비노조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한마음을 가지고 단결해왔고 지금까지의 투쟁 과정에서 헛되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손을 맞잡고 세상은 변한다는 인식으로 참여한 투쟁은 꼭 승리로 돌아왔다. 그런 만큼 앞으로의 10년 역시 우리 스스로 교육의 주체이자 자존감 있는 노동자로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비정규직 철폐라는 우리의 염원이 꼭 이루어져 더는 학교 안에서 차별받지 않고 당당히 교육의 주체로 살아갈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은 촛불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권의 평가가 이뤄지는 해이며, 코로나로 인해 노동자의 고통과 희생이 그 어느 때보다 예상되는 해입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노동운동을 개척해야 할 과제가 눈앞에 펼쳐져 있기도 합니다. 저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노동 적폐 청산과 노동자를 시대의 주인으로 올려세우는 데 앞장설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