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학비노조는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치세력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 즉 노동자 직접 정치로 노동이 정치의 주인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 정치교육에 힘을 싣고 있는 인천지부 고혜경 교육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인천지부 초대 지부장인 고혜경 교육위원장은 인천지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조합원을 결속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그가 노동운동에 열을 올리게 된 계기는 정규직의 일방적인 갑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학교 급식실에서 처음 일했을 무렵에는 급여명세서에 저희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용잡급’으로 표현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었던 것 같아요. 학교 급식실에 일반직 9급 공무원인 정규직 조리사가 전보로 인해 바뀌게 되었어요. 전남이나 경남 등 타 지역은 이미 비정규직 조리사도 많이 있었지만 인천은 특채를 통해 정규직 조리사를 배치했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그 정규직 조리사마저 자연 감소시키고 있지만요.
그런데 인천은 조리사가 배치기준안에 들어가 있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임에도 그 분은 거의 일도 하지 않고 조리사 역할보다는 정규직이란 이유로 도를 넘어서는 갑질로 우리를 힘들게 했어요. 당시 영양사 선생님도 저희를 존중해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말이죠. 한 보름쯤 지났을 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양사 선생님께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더니, 중간에서 매우 난처해하며 저희에게 “조금만 더 두고 봐요. 참아봐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정규직 조리사는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희에게 욕까지 퍼부으며 더욱 심하게 갑질을 했죠. 결국 급식실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교장 선생님과 면담도 여러 번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우리 편에서 서주는 사람이 없구나, 우리를 대변해줄 조직이 필요하다’라는 것을요.”
한참을 어떻게 하면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지, 우리를 대변해줄 조직은 어디인지 고민하던 그는 2011년 5월 각 학교로 우편 발송된 학비노조 소식지를 통해 ‘학비노조 인천지부를 준비하는 모임을 하겠다’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인천지부 모임에 대한 소식을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교회를 다녔었는데 마침 수요예배가 있는 날 모임이 있는 거예요. 민주노총 인천본부 사무실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제가 교회 가느라 저희 학교 막내를 그 모임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모임을 다녀온 막내가 가입서를 가지고 오면서 북부에서 몇 학교만 오고 다른 지역은 한 명도 안 나왔다는 거예요. 바로 가입서를 제출하고 그때부터 자발적으로 주변에 아는 학교를 중심으로 가입을 권유하고 다니면서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혜경 교육위원장의 추진력은 대단했다. 가입한 지 한 달 만인 2011년 7월 22일 창립총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인천지부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정식 출범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때만 해도 아직 노동조합 전국필증을 받지 못했던 학비노조였는데, 2011년 12월 인천지부 이름으로 지역노조 필증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고 그동안 불안정했던 인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가는데 이바지 했다. “노동조합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명분’입니다. 즉 ‘노동조합필증’은 유령 신분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데 명분이 되었고 교육청과 당당하게 교섭하고 투쟁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된 거죠.” 고혜경 교육위원장은 2011년부터 약 4년 반 동안 인천지부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본조에 들어가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한 뒤 2020년 1월 다시 인천지부로 돌아와 현재까지 교육위원장을 맡으며 조합원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인천지부를 설립하고 1년 동안은 학교 일을 하면서 지부장 일을 동시에 하려니 노동조합의 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2012년 10월 경기지부에 이어 두 번째로 무급 전임을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조직사업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당시 김광호 조직국장님과 함께 서부, 북부, 동부, 강화 등 섬을 제외한 인천 전 지역 500여 개 학교를 일일이 순회하며 조합원을 모집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실제로 한 학교는 처음에는 가입을 거부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3년 동안 꾸준히 방문해 가입시킨 사례도 있어요. 그만큼 그때는 저의 희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2015년 4월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그때부터 근로시간 면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는 엄청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15박 16일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인천지부의 첫 농성투쟁이자 학비노조 최초의 노숙농성이었어요. 당시 비닐이나 천막도 치지 않고
맨바닥에서 스티로폼 하나로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했는데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혜경 교육위원장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을 위해 수많은 투쟁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4번의 삭발과 4번의 단식으로 결의를 다진 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투쟁은 2014년 겨울 전문상담사와 사서의 무기계약 전환을 만들었던 노숙농성이다. “2014년 인천지부에는 전문상담사 160여 명과 사서 190여 명, 총 350여 명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10개월 계약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10개월마다 계약이 만료되면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장 면담, 학교 앞 1인 시위 등 해고 투쟁을 끈질기게 벌여왔어요. 여러 번의 투쟁 끝에 처음에는 11개월로 연장되었다가 12개월로 그리고 무기계약 전환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인천시교육청은 350여 명의 전문상담사와 사서 전체를 계약 만료 통보를 했어요.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었죠.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는 엄청 추운 겨울이었음에도 15박 16일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인천지부의 첫 농성투쟁이자 학비노조 최초의 노숙농성이었어요. 당시 비닐이나 천막도 치지 않고 맨바닥에서 스티로폼 하나로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했는데 인천지부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농성 현장을 지나가던 한 학생이 자신도 발언하고 싶다며 마이크를 잡았던 일이 있어요.
그 학생은 “학교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 학교 내 전문상담사 선생님이 고민도 함께 들어주시고 저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주셨는데 그분과 다음 해에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며 “학생 관점에서도 이 같은 고용 형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교육청은 왜 개선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 발언대에 올랐다”고 말했어요. 그 현장에는 학생의 상담을 맡았던 전문상담사도 함께하고 있어서 농성 현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었습니다. 다행히 전문상담사와 사서들은 이 투쟁을 통해 무기계약 전환을 이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노동조합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스포츠강사직종은 무기계약조차 되지 않아 고용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네요.”
2017년 당시 새누리당 이언주 국회의원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밥하는 아줌마’라고 비하하면서 막말 끝판왕을 보여줬던 사건이 있다. 당시 고혜경 교육위원장을 중심으로 학비노조는 국회에서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이언주 의원이 먼저 선수 치며 대국민 사과를 했었다. “이날 사과를 하고 나오는 이언주 전 의원과 국회에서 맞닥뜨렸어요. 도저히 용서되지 않아 “나라의 녹을 먹는 국회의원이 이런 식의 막말을 할 수 있냐”며 “급식실에 한 번이라도 가봤냐”고 잘라 말했죠. 그리고 “이미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그 못이 가슴에서 빠지겠냐, 어떤 취지에도 용서할 수 없다”라고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단호한 말들에 이언주 전 의원이 정말 혼쭐났었습니다.”
학비노조가 출범한 지 10년이 된 시점에 과거를 되새겨 보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고혜경 교육위원장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99%가 고용안정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처음 노조가 설립됐을 때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약 2.5배 이상 급여를 끌어올렸다. “고용안정 부분에서는 정말 비약적 성장을 이뤘지만, 앞으로의 10년은 이 같은 처우개선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을 챙기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학비노조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만 이언주 전 의원처럼 저희를 비하하는 막말하는 사람들도 없어질 거예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정치세력화를 통해 노동자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민의 국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비노조는 현재 진보정당을 배타적 지지하며 직접 정치를 위해 한발 한발 내디디고 있다.
“노조 안에서도 ‘우리는 노조만 잘하면 되지 정치까지 해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하지만 진정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를 위해서는 정치판이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치세력화를 강조하는 거예요. 2018년 지방선거 때 저를 포함해 학비노조에서 여러 명이 민중당 후보로 나갔던 적이 있어요. 그 때 민중당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당원으로도 많이 가입해주셨습니다. 노동조합이나 잘하지 정치가 웬 말이냐고 하던 조합원들, 노동자 직접 정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셨던 분 중 상당수가 지방선거를 통해 저절로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작년에는 총선에도 출마 했습니다. 후보로 출마하는 자체만으로도 조합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가 왜 정치까지 해야 하는지 거부반응이 남아있는 이유는 바로 정치에 대한 교육이 조합원 전체에게까지 잘 안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잘 설득해나갈 계획입니다. 내년 지방선거에도 우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누군가는 또 출마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만으로는 우리의 처지를 바꿀 수 없으니까요. 지방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더 성장하고 정치에 대한 조합원들의 거부반응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번 두 번의 도전으로 바로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는 않겠죠.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바꿔나가고 교육을 통해 조합원의 정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나간다면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이란 우리의 슬로건이 현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로 달려가는 길에 많은 조합원이 함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